구슬 서 말을 꿰는 놀이의 가능성에 관해: <도깨비월드>를 게임으로 들여다보기
이경혁

게임으로서의 <도깨비월드> –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
현대 미술에서 많은 작가들이 디지털게임의 방식을 참고하지만,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말들이 많다. 새겨들을 부분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게이머들의 볼멘 소리에 그치기도 한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디지털게임의 방식이라는 말이 매우 넓은 범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짧은 글과 말에서 이를 특정하기보다는, 웹 상에 구현된 <도깨비월드>가 왜 우리로 하여금 ‘게임 같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는지, 그리고 게임으로 이 작품을 접근했을 때 무엇이 게임과 다른지를 생각해 보는 편이 용이할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마치 ‘쯔꾸르’같은 에디터로 만든, 혹은 몇 년 전 메타버스 붐이 일었을 때 쏟아져나온 2D 기반의 맵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세계 안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사방으로 움직이고 주변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 분명 <도깨비월드>를 게임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한다. 그런데 단지 캐릭터가 이동하고 상호작용한다고 해서 이를 게임의 방법론을 적용한 작품으로 부르기에는 여러모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단 하나만 거론해 본다면, 플레이어는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일 것이다.
<도깨비월드>는 주어진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무형의 요소들을 배치하고 있고, 이를 활용해 참여자들로 하여금 각자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도록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참여자, 플레이어가 이러한 요소들을 활용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설정이나 이야기는 웹사이트 본체가 아니라 디스코드라는 별도의 채널을 통해 누적된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디지털게임이 오랫동안 보여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즉각적으로 세계에 변화가 일어나는 법칙에 익숙해져 온 게이머 정체성들은 고개를 갸웃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게임의 주요한 속성으로 꼽는 상호작용성이 <도깨비월드>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짚어볼 수 있다. 첫째는 제한된 자원으로 풍부한 상호작용을 매체 안에서 구현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점이다. 풀을 밟으면 눕고, 물건에 부딪히면 부서지고, 상대의 요구를 거부하면 칼을 뽑아드는, 어느새부터 익숙해진 디지털게임 속의 상호작용은 사실 엄청난 맨아워와 자금을 요구한다. 그러한 물적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 구현되는 많은 아이디어들은 결과물에서 생각보다 많은 상호작용을 플레이어의 상상에 맡겨버리게 된다.
두번째는 어떤 이유로건간에 결국 플레이어들이 작품과 부대끼며 경험한 무언가가 작품 외부 채널로 빠져나오게 되면서 플레이어가 작품에 피드백해야 할 이유가 상당부분 소실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피드백은 존재하는 세계를 바꾸기보다는 별도의 세계에 기술된다. 이는 사실 게임의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어떤 매체를 바라보고 그로부터 수용자가 자신의 경험과 감상을 다른 영역에 기술하는 행위, 이를테면 감상문에서 시작해 2차창작으로 이어지는 수용자경험의 재맥락화에 더 가까운 형식으로 보인다.
참여자의 피드백이 가상의 세계와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원전이 되는 <도깨비월드>의 아이디어가 보다 수치화된 데이터로 파고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는 결국 연산기계고, 모든 디지털게임의 상호작용은 연산을 바탕으로 구현된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이야기가 연산될 수 있는 형태로 인코딩된 이후에야 우리는 <도깨비월드>의 게임적 가능성을 이야기해볼 수 있겠지만, 이미 이야기한 바 대로 이는 더 많은 리소스를 요구하는 일이다. 게임을 만든다는 게, 참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도깨비월드>는 게임은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지반 위에 구현된 <도깨비월드>는 일반적인 디지털게임과는 존재론적 측면에서 큰 차이점을 보이는데, 바로 온전한 물리적 원전으로서의 ‘도깨비공원’이 존재하고 그와 강하게 연계된다는 점이다. 물리적 실체로서의 공원과 그 안의 조형물들이 갖는 관계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디지털공간 안에 재현 혹은 복원되었다는 점에서 <도깨비월드>는 디지털게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메타버스로서의 특징에 좀더 가깝게 보일 수 있다.
<도깨비월드>에 진입한 이용자들은 이 공간의 물리적 실체가 있다는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든 인지하게 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아제로스와 같은 완전한 가상공간도,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가 복원한 20세기 초반 미국 서부처럼 실존했지만 고증에 기반한 상상으로 재현해 낸 가상공간과는 다른 세계다. 때문에 <도깨비월드>에서 물리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도깨비공원의 존재와, 그 실체와 <도깨비월드>가 갖게 되는 관계성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다. 어떤 식으로든 <도깨비월드>의 모든 오브젝트는 원본으로서의 공원 오브제들과 연관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도깨비월드>의 의미는 원본으로서의 공원과 ‘어떻게’ 각각의 오브젝트들이 관계맺게 되느냐는 문제와 긴밀하게 엮인다. 실존하는 공원의 무엇이 어떻게 데이터로 변환되었는가? 데이터화한 <도깨비월드>에서 추상된 것은 무엇인가? 연산이 가능한 컴퓨팅기기에서 연산대상이 되는 데이터로 가공된 <도깨비월드>의 오브젝트들은 다른 오브젝트들 – 전체 지도, 사용자 캐릭터, 혹은 다른 공원 내 조형물들 및 카드들 – 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용자들은 물리적 실체로서의 공원과 <도깨비월드>의 차이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된다.
이를 테면 공원에서의 산책은 <도깨비월드>에서 키보드 방향키를 눌러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캐릭터의 이동으로 대체된다. 이 과정에서 실제 공원을 산책할 때 느낄 수 있었던 많은 것들, 바람과 냄새, 두 다리에 누적되는 피로감, 혹은 실제로 걸을 때 겪을 수 밖에 없는 이동시간의 문제와 같은 것들이 추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깨비월드>는 여전히 도깨비공원의 디지털 그림자로 이해된다.
추상된 현실의 많은 것들을 대신해 디지털공간에 들어찬 것은 새로운 상호작용들이다. 시공간은 보다 압축되었고, <도깨비월드>안에서는 오직 각각의 현실 오브제들이 상징하고자 했던 개념들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 개념들은 연산이 가능한 데이터이며, 가상공간 안에서 데이터는 새로운 상호작용을 열어낸다. 각각의 오브젝트들에는 원전의 이야기가 일종의 범주화를 통해 재분류된다. 종족과 속성이 부여되고 수치화된 이들 데이터는 참여자들로 하여금 직접 손에 들고 조물락거리며 무언가 만들어볼 수 있는 형태임을 직감하기 어렵지 않지만, 그 재조립은 생각처럼 녹록한 것은 아니다.
<도깨비월드>는 데이터로 재현된 오브젝트들의 상호작용을 직접 월드 안에서 구현하지 않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바 대로, 실제 데이터들의 상호작용을 프로그램 안에서 일으키고 이를 통해 가상공간에 변화를 주는 일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많은 리소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깨비월드>가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데이터 기반 상호작용보다는 이들 데이터가 상징하는 원전의 내러티브 요소들을 이용자들로 하여금 가지고놀게 만드는 것이다. 각각의 오브젝트가 담고 있는 설정을 묶어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디스코드라는 매체를 기반으로 해 별도로 구성되는데, 이는 새롭게 구성된 가상세계 속의 이야기가 책과 같은 다른 매체에 적히는 개념과 유사하다. 만들어진 가상세계는 그 안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사건과 이야기를 직접 통제하지 못하며, 이는 다른 매체로 미끄러져 나간다.
그렇기에 <도깨비월드>는 엄밀한 정의로서의 디지털게임에 부합하는 텍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게임이 아니라는 말은 <도깨비월드>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원전을 가지고 원전과 강한 연계성을 지니며 재현된 데이터 덩어리는 게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원전으로서의 세계를 재현하며, 재현된 텍스트에 대한 해석과 개입은 마치 일반적인 다른 매체들과 같이 디스코드라는 새로운 매체에 재해석되어 기록된다. 오히려 이 과정을 단순하게 ‘게임’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도깨비월드>가 가진 더 많은 가능성이 생략되는 지점도 존재한다.

불확정성의 미래에 이르러 비로소 게임이 되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 작품의 배경을 듣게 된 과정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실존하는 도깨비공원의 미래였다. 원전으로서의 공원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좋은 기회를 만나 리뉴얼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한 시대를 점유했던 역사적 공간으로서 퇴역할 수도 있다. 미래가 확정되어 있지 않기에, 그 공간의 사이버 재현물로서 존재하는 <도깨비월드>의 미래 또한 확정적이지 않다. 현실의 공원이 사라진다면 <도깨비공원>은 일종의 아카이빙이자 메모리얼 파크가 될 것이고, 공원이 존속하게 된다면 계속 원전과의 강한 연계성을 유지하는 메타버스와 같은 공간이 될 것이다.
공원의 미래에 대한 두 개의 사례는 <도깨비공원>의 존재론적 의미를 ‘기록’과 ‘태그’ 사이에서 오가게 만든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은 사라져간 것들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보다는 그 요소들이 서로 맺고 있었던 상호관계성을 지속하고 보존하는 형태로 기능한다. 디스코드를 통해 물리적 공원의 요소들이 담고 있었던 의미들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은 <도깨비공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뤄질 수 있는 관계지향적 기록물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낼 수 있다. 공원이 계속 존속하게 된다면, 가상공간 속의 모사품인 <도깨비공원>은 물리적 제약들이 추상된 세계 속에 온전히 의미만 남은 것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원전의 의미가 다른 차원에서 새롭게 재조합된 결과물과, 그 결과물이 현존하는 원본 공원과 드러내는 차이를 통해 태그된 의미들의 확장을 꿈꿔볼 수 있는 매체가 된다. 실제 공원의 미래가 어떠한 것이 될지라도, 나름의 충분한 의미로 이 사이버공간은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원의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도깨비월드>의 미래 또한 우리는 섣불리 예단하지 못한다. 과거에 대한 애수어린 기억과 현실에 존재하는 무엇의 쌍으로서의 의미 사이에서 이 작품의 미래는 말그대로 도깨비 장난 같은 것이 된다. 무엇이 튀어나올 지 모를 데이터화한 이야기의 조각들 속을 누가 누비고 다니며 꿰어낼 지 모르듯, 애초에 이 작품 자체도 어떻게 의미지어질 지 규정되지 않았고 이런 점에서 <도깨비월드>는 참으로 게임같은 구석을 마침내 드러낸다. 규정지어지지 않은 채 떠다니는 의미를 널어 두고, 참여자로 하여금 오브젝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실을 이어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실물 공원에서는 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실물 공원이 아니면 불가능한, <도깨비월드>라는 게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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