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라는 축제 - 이해강의 도깨빙 월딩
글 조주리 (전시기획, 미술평론)
페인터로서 이해강을 처음 만난 것은 몇 해 전이다. 왜곡된 기억일까 싶지만, 아틀리에 안 편으로 그래피티용 스프레이가 한 가득이었고, 형형색색의 강력한 캔버스가 사방에 도열된 작업실에 설명하기 힘든 귀기(鬼氣)가 흘렀다. 경쾌한 스케이트보드 룩의 이해강의 맑은 표정, 천진한 말투와 대비되어 그렇게 기억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백건데 그날의 작업실 풍경과 화면을 뚫고 나오는 ‘것’들의 울퉁불퉁한 게슈탈트, 그날 접한 이야기 모두 난생 처음 듣고보는 생경함이었던지라, 작은 판단조차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온통 도깨비였다. 이에 얽힌 장구한 서사와 이해강이 짊어진 예술적 유산들, 신인 작가로서 입증해내고자 했던 작업의 방법론을 듣는 내내 판단을 잠시 멈춰야만 했다. 놀라움도, 공감도, 의심도, 무관심도 오롯이 비평적인 판단이라 할 수 없었지만, 평가를 유예해야만 하는 낯선 작업과 대면하는 순간 익숙하게 소비해오던 시각예술의 교집합을 건너뛰어 무한한 공집합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시간 속에서 두텁게 쌓여온 ‘에픽(epic)’의 한 부분으로 슬며시 침투하는 기분에 비견할 수 있을까. 작업실을 뛰쳐나와 올 해 이해강이 준비한 ‘도깨비 페스티벌’로 입장하기 전, 이에 얽힌 프리퀄을 잠시 들춰봐야만 할 것 같다.
우연한 계기로 페인팅을 시작한 이해강은 몇 차례 그룹전과 개인전을 통해 스트리트 아트가 화이트큐브에 침투했을 때 발생하는 이질적 긴장감을 꽤 인상적인 방식으로 펼쳐내었다. 만화나 대중문화 속 캐릭터와 같은 팝적인 소재와 자신의 서사를 결합한 이해강의 작업은 두 가지 대비되는 캐릭터의 모핑(morphing) 속에서 발생하는 잔영으로 인해 경계가 뭉개지는 듯한 효과를 회화표면으로 끌고 들어왔다. 주저함없이 그린 것 같은 빠른 속도와 터프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그래피티 작업의 영향이지만, 그와는 또다른 매체 실험이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걸친 회화 이미지는 그린 것도, 칠한 것도 아닌, 마치 즉흥에 기반한 액션 페인팅처럼 다가오지만 각각의 것들이 명확한 출전을 갖고 있고, 일관된 계획 하에 시뮬레이션 되어 나온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현실계에 존재했던 도깨비 조형물을 원전삼아 제작된 수백점의 디지털 드로잉은 포토샵 안에서 맹렬한 회전운동을 하게 되고 그 궤적들이 다시 평면으로 회귀하며 서투른 환영을 만들어 낸다. 이렇듯 실재와 가상 사이를 순환하며 만들어 낸 작업 안에는 필연적으로 이항대립적 요소들의 진동과 공백이 동시에 존재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세계에 나란히 위치한 작업 간의 접속과 순환에 대한 질문, 이미지의 과잉과 빈곤, 제도화된 미술과 미술에 수렴되는 하위적 요소들 사이에 놓인 장벽에 관한 예민한 인식은 이해강 작업을 촉발시키는 기저의 조건들이다.
도상적 관점에서, ‘도깨비’는 최근에 등장한 소재처럼 보인다. 초기 작업에서 자주 선보였던 만화나 대중문화 속 캐릭터와 달리 도깨비는 작가의 부친께서 생전에 건립했던 제주도의 도깨비 공원 내에 설치되었던 도깨비 캐릭터를 아카이브로서 차용한 것이다. 이해를 돕고자 상세한 설명을 하자면, 2005년 당시 이해강의 아버지, 故 이기후 교수는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수집, 연구한 도깨비 캐릭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로 재해석하고 서사를 입혀 조형물로 제작하고, 6천여평 규모의 테마파크를 조성하여 운영해 온 바 있다. 직접 땅을 다지고, 전체 구성과 설치를 완성하기까지 7년이 소요되었고, 그 가운데 탄생한 도깨비 조각의 숫자가 2300여 점이라고 하니 집념과 강박, 고행과 헌신을 떠올리게 하는 프로젝트였음을 은밀히 가늠해 본다. 그러나 세간의 큰 주목과 높은 평가를 받았던 공원은 건립 2년 만에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기후 교수의 사망소식과 함께 퇴장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도깨비 공원은 남은 가족이 누려해 할 유산이자 해결해야 할 부채가 되었다. 아버지의 과거는 가족의 현재와 맞물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깊은 회환과 생생한 질문을 남긴다. 무엇이 한 개인으로 하여금 그토록 집념어린 일을 추동하였을까. 그 수많은 도깨비들의 형상과 배치, 이야기의 향방은 시간 속에 영원히 잠들어 망각되고 마는 것일까. 현실 논리로 인해 결국 폐기되어야 하는 장소에 봉인된 한 인간의 노력과 그것의 예증이라 할 수 있는 도깨비 종족의 자취는 아버지를 이어 미술 작업을 이어나가는 이해강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어, 또 다른 차원의 유산으로 이행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다.
올해의 ‘도깨비 페스티벌’은 이에 대한 응답이자 모색이다. 이십년 전 세워진 도깨비공원의 물리적 축소판인 동시에 컨텐츠의 확장판이며, 두 세대를 이은 세계관의 중첩과 연결이기도 하다. ‘페스티벌’은 현실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흥을 발사하는 행위에 대한 직접적 명칭이기도 하지만, 디지털로 되살려낸 도깨비 종족의 부활과 오래전 문닫은 공원의 세계관 속으로 재방문, 후속 세대의 헌정 행위를 두루 포괄하는 일종의 수사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도깨비들이 살아가는 가상의 세계관이자 참여형 웹 게임 작업인 <도깨비 월드>와 현재는 문을 닫은 제주의 <도깨비 공원>, 이 둘을 매개하는 프로그램으로서 <도깨비 페스티벌>의 삼중 레이어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필요하다. 2021년부터 시작된 도깨비 회화 시리즈, 2022년부터 진행된 도깨비 조각에 관한 연구조사 및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 그리고 2024년, 지금까지의 작업 수행과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만든 온라인 플랫폼, 도깨비월드의 웹사이트 (https://dokkebi.world)가 함께 연동되며 서로를 지시하는 구조다. 공원 조성과 도깨비 조형물 제작에 온 열정을 바쳤던 ‘아버지 도깨비’와 이를 다시 디지털 아카이브로 복각하고, 공원의 지형과 캐릭터의 서사를 게임으로 되살린 ‘아들 도깨비’의 작업 궤적과 몰입적 태도가 중첩됨은 물론이다.
한편으로 일시적 축제로 이행하게 된 작은 전시의 기나긴 여로가 이해강 개인과 가족에게는 한참 전에 수장되거나 잊혀진 도깨비 수백 수천, 그리고 아버지를 기리는 진혼식일 것이다. 이승과 저승을 통과하는 포탈로 상정된 전시장은, 그러나, 개인 서사 바깥에 있는 대다수의 관람객들에게는 힙스터 예술가들과 마주할 수 있는 오늘의 공연장이자 전시장, 워크숍 공간 일 것이다. 몽환적 감각으로 연출된 민속 정취는 행사의 맥락을 적절하게 은폐하면서도 호기심을 부추긴다. 그런가하면, 디지털 도깨비들이 우글거리는 온라인 플랫폼 또한 페스티벌의 또 다른 장소이다. 작가를 처음 만난 당시부터 이해강은 아버지가 남긴 도깨비 조각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디지털 이미지와 애니메이션 형태로 부활시키고,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도깨비 월드를 재건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으로서의 웹페이지를 구상해 왔었다. 회화작업을 위한 도상으로 도깨비 캐릭터를 소환하는 것이 자기 자신과 관람객을 위한 소극적 초대라면, 온라인 게임의 영역으로 옮겨와 유저들이 소비할 수 있는 컨텐츠로 설계하는 일은 훨씬 더 대중적인 접근통로가 되었다.
홈페이지로부터 현실세계로 튀어나온 도깨비 월드의 문을 열어내는 과정에서 이해강은 주변의 동료들을 규합하여 하나의 팀으로 묶어 공동연출과 제작을 시도하였다. 전시의 공간이 축제적 사건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도깨비 공원’이 부자간의 예술적 계승이라는 숙제를 넘어서고, ‘팀 도깨비월드’로 재편되어 공동의 예술적 이해와 실천으로 옮겨올 수 있었던 선택이다. (*도깨비월드는 시각예술가 이해강을 중심으로 아트디렉터 아리킴, 스토리텔러 정재원, 아키비스트 김유리, 프로그래머 강재석, 웹디자이너 권민서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이해강이 페스티벌에서 맡은 몫은 작업의 당위성을 꾸준히 확인하고 설득하며, 협업자들이 온전히 이 프로젝트에 몰입하여 각자 중요한 의미를 성취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이었을 것이다. 지난 시간 홀로 매달려온 공원에 대한 애착과 무의식적으로 그려놓고 있었던 전시의 형상을 잠시 내려놓고, 또 다른 이들의 해석과 대응을 살피고, 동료들의 협업과 협조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방향으로 선회하고자 한 것이다. 그토록 신산한 과정을 통해 부분적 경로 이탈과 어쩔 수 없는 포기의 지점, 폭발력있는 협업의 구간을 차례로 관통하며 ‘도깨비 페스티벌’은 전시라는 이름을 걸친 공동의 축제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전시로서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 상태에서도 관람할 수 있는 자족적 세계로 연출되었으나, 언제든지 춤과 노래, 사람들의 이야기와 행동이 열릴 수 있도록 예비된 빈 자리이며, 전시의 준비 단계에서부터 마무리까지의 정성을 다해 꽉 채운 제의의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예로부터 도깨비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야기가 무성한 자리였다면 기획에 차질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도깨비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 의미를 조금 더 얹어보자면 , 인간도 신도 아닌 중간형의 잡귀/잡신에 대한 포괄적 명명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보다 우월한 초능력과 기술력, 넘치는 장난끼, 놀라운 생산성, 내기꾼, 허수록함. 이런 것들이 도깨비의 특질을 요약하는 열쇳말이다. 공포보다는 즐거움에 가깝고, 죽음보다는 삶에 가까운 존재로 오독하고 싶어지는 덕목이다. 신비함과 불온함, 불안정성과 창조성에 관한 덕목은 오늘날 창작자들의 내면과도 닮아있는 교차점이다. 어째서 (아버지가) 도깨비에 주목하였고, 또 어째서 (아들이) 도깨비의 유산을 이어가고자 했는지에 관한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이로써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천 점이 넘는 도깨비 자소상이야 말로 기어이 되살려 마음 깊이 추념하고, 한바탕 놀고싶은 누군가의 한 조각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축제의 날들과 그 면면을 조금 더 들여다 보도록 하자. 교회건물이었던 TINC(성북구 디스이스낫처치)의 장소 선정은 썩 괜찮은 선택이었음에 틀림없다. 입구를 가로막듯 서있는 커다란 머릿돌과 내부로 이어지는 전시공간의 어슴푸레한 정경은 기대했던 것보다 고요하고 몰입적이다. 한낮 교회당 창을 통해 들이치는 빛을 가리고 장막 위로 작게 난 구멍을 통해 투과되는 빛이 핀 조명처럼 공간 내부를 밝히면서, 공간의 연출에 따라가고자 하는 맘이 샘솟는다. 도깨비가 튀어나올 것 같은 큰바위와 평상돌,벽, 밝은 곳과 응달진 곳이 교차하며 생겨가는 다채로운 지형과 무드는 무대미술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공간에 배치된 조형들은 독립된 이름으로 명명된 조각이면서, 연주와 워크숍, 이야기의 배경으로 기능한다. 공간에 개입되는 다양한 사운드와 빛, 관람객의 움직임이 공간의 정동을 창출하는 관계적 요소로 작동한다. 프로그램은 9일 동안 진행되었고, ‘도깨비월드’와 연결되는 포탈의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관객들이 함께 방망이를 흔들며, 다국적 밴드 ‘돈노도조’와 뮤지션 나언의 즉흥연주(Jam)와 일렉트로닉 셋으로 첫 날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목소리와 이야기, 움직임과 춤, 소리와 음악을 오가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의식이 쉼없이 이어졌고, 이런 것이 축제의 본질이라면 본질일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 아흐레간의 전시가, 축제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해강이 페인터의 자리에서 잠시 이탈하여 스스로 축제의 감독이 되기로 한 순간부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동과 고민과 즐거움이 함께 했으리라 짐작하고 공감한다. 제주도의 도깨비 공원이 개장했던 2005년의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년의 시간 속에 깃든 아버지의 유산을, 때로 버겁고 벅찼을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기억을, 그것이 작업으로 옮겨오는 동안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자기 의심과 불안과 안녕을 고할 수 있을까? 그 또한 그만한 시간이 들 것이다. 행사를 돌아보는 내내 전시와 축제라는 말을 번갈아가며 써야했던 것은, 오늘날 전시가 결여한 서사와 정취, 의식의 해방과 연결의 가치를 축제라는 수사로서 회복하고 싶었던 마음이고, 반면 축제에 결여된 서사의 정합과 제작의 치밀함을 전시라는 제도 안에서 갈구하고자 했던 까닭이다. 물론 도깨비페스티벌은 너무나 예외적이며 특수한 예증이긴 하다. 제도적 지면에서도 다뤄지고 기록되기 힘든 영역에서 솟아난 행사라는 생각에, 도깨비 페스티벌이 지닌 복잡한 레이어와 미처 소화되지 못한 연구 지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기억이 휘발되기 전 다급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작가가 작가되기를 열렬히 소망하게 된 순간이 언제였을까를 떠올리며, 도깨비라는 말 대신 도깨’빙’으로 고쳐쓴다. 타인의 경험과 기억에 예리하게 공명하고 풍부하게 상상하는 누군가의 세계가 월’딩’인 것처럼.
경계선상의 플레이어, 그와 마주한 사이 연결의 합주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편집장)
작가 이해강에 대해 알아보려 할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정보는 ‘그래피티(graffiti)’이다. 화려한 색, 자유로운 선, 칠해지고 덧대어지며 뿌려진 다양한 질감. 대단히 밀도 높은 형상이 함께하며 혼란하지만 자유롭고, 폭발적이지만 방향성이 조율된 것이 그의 작품에 대한 인상이다. 매우 많은 요소가 엮여있는 표면에 시선을 이끄는 덩어리 감이 사고의 방향성을 유도하는 가운데 그것을 통해 본격적인 인식과 연결의 게임이 시작된다.
‘그래피티’에 대해 떠올려볼 때 가장 먼저 수면에 닿는 것은 자유, 그리고 반항이다. 그래피티의 실행자는 거리(street)나 역사(station) 같은 공공장소에서 어떠한 허가나 허락 없이 시각적 기호를 남긴다. 이것은 자유로운 자기표현으로서의 인간 본연의 본능에서부터 억압이나 규칙과 같은 사회적 틀에 대한 저항, 그리고 그러한 메시지를 공유함이라는 정치적 함의까지 인간의 폭넓은 문화적 토대를 공유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영역에서 차용되어 각자가 목표한 바를 강화하며 문화사회 전반에 자리하고 있다. 이해강은 그 토대에서 현대미술의 대지에서 캔버스, 애니메이션, 디지털 매체를 포괄하는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다만 그의 대지는 미국 사회의 대표적인 하위문화에서 독자적인 미학을 지닌 예술형식이거나 1980년대 등장한 신표현주의와 연결하는 관점, 또는 새로운 형태의 일상과 예술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해석한 모델 등의 기존의 그래피티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르게 읽힌다. 그의 궤적은 자유롭지만 경계의 명확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며, 반항이지만 동조와 이해를 근간하여 펼쳐진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거리와 갤러리를 병치할 때 은연중에 드러나는 수직적 위상과 충돌, 캔버스라는 전통적 매체와 TV/Paint Animation Pro라는 디지털 툴(tool)로 대비되는 수평적 범주가 자아내는 대비의 좌표, 그 위에서 노니는 경계선상의 탐색자를 떠올린다.
개인적으로 그를 처음 접한 것, 동시에 가장 인상 깊었던 그와의 조우는 갤러리2(Gallery2)에서의 개인전 《MASHED POTATO》를 통해서였다. 당시 큐레이터였던 지인의 소개로 방문하게 된 전시에 펼쳐져 있던 풍경은 생경하나 친숙한 기묘함이었고 단서를 찾는 과정은 연결이 주는 쾌감이 있었으며 종국에는 이해를 관통하는 종합의 즐거움으로 매듭짓는 롤러코스터 같은 여정이었다. 가로로 11개의 이미지가 3줄로 배열된 33점의 그림으로 구성된 <BHWS02 ~ WDYR70>를 처음 보았을 때 각각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조합과 구성이 무엇인지를 쉽게 파악하지 못했다. 각 프레임 안의 이미지가 초상화와 같은 구도와 형상이며 몇 개의 이미지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닮았다는 것, 그리고 그 캐릭터가 어떤 동물인지를 인식하면서 이해가 시작되었다. 곰돌이 푸(Pooh)의 티거(Tigger) 같은 형상 옆에 루니 툰(Looney Tunes)의 벅스 버니(Bugs Bunny)처럼 보이는 모습이 떠오르며 불현듯 12간지와 띠, 그러니까 우리의 나이 개념이 연결되었다. 그런데 닮았거나 어떤 것 같다는 확신과 확인이 아닌 추측이 우선 닿은 것은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 변형과 재구성이 되었다는 것이며 무언가 겹쳐있거나 중첩되고 혼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인에게 다소의 힌트를 듣고 나서야 현재의 구도가 이해의 영역에 온건히 안착하였다. 우리나라의 빠른 연생에 대한 사회적 합의. 교육법상 3월 1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에 태어난 사람들이 한 학년에 속하는 상황 덕분에 같은 해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1~2월 출생자의 나이가 사회 집단 안에서 다르게 이해되는 국면은 집단 안에서 소속과 규정에 대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치게 했다. 누군가는 동질감을, 누군가는 혼란과 갈등의 상황을 마주한다. 이런 모호한 한국적 생년의 개념, 두 개의 출생 연도의 띠가 한 연령대로 이해됨에 펼쳐지는 분광된 상황에 대해 작가는 두 띠를 상징하는 동물을 모핑(morphing)이라는 이미지 변형의 사이 과정을 밟은 듯한 장면으로 재현해 냈다. 쥐와 소, 소와 호랑이, 호랑이와 토끼. 빠른 연생을 떠올리는 이 걸쳐진 정체성의 동물 간의 융합 이미지는 서로 연결되어 결국 그 시작과 끝이 결국 같은 나이로 인식되는 그럴듯하면서도 말이 안 되는 이미지의 집단을 형성했다.
여기에 살펴볼 중요한 지점이 있다. ‘사이’라는 부분이다. 위에서 설명한 생년, 즉 띠를 상징하는 동물의 사이. 그리고 그래피티에서 시작하여 회화로 안착한 매체의 사이, 공공장소이자 점유해야 하는 투쟁의 장소로서의 거리(street)와 사적 공간이며 또한 예술만을 위해 안배된 전시장의 사이. 그는 각자 구분되어 인식되고 우리의 내외부에서 작동하는 그 사이에서 차이를 감각하며 그의 시각과 해당 순간의 결과가 자리할 영역을 고려하여 자신의 심상을 안착시킨다. 그 재현의 과정에 있어 작가의 사이 경험과 행위가 흥미롭게 작동한다. 그는 긴 그래피티 활동을 진행했고 갤러리와 레지던시 기반의 창작 활동 중이며, 붓과 캔버스와 동시에 애니메이션 툴을 직접 다루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그는 자유롭게 경계선 위를 활보한다. 그래피티나 회화에서 물질성을 고려하여 탄생한 이미지가 애니메이션 영상의 소스로 다루어질 때 그 비물질성과 운동성이 가미되고, 반대로 물질로 다루기 힘든 심상에 대해 그래픽 이미지 기반의 영상을 제작한 후 그 사이를 메우는 이미지를 회화에서 재현하며 물질성이 확보되는 등의 과정과 결과이다.
이러한 사이를 다루는 그의 행위는 앞서 언급했듯 물질성을 대표하는 회화작업과 비물질적 영역에 걸쳐있는 디지털 매체 작업을 병행하면서 발현 중이다. 그 중요한 분기이자 중계지가 바로 ‘도깨비 공원’일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도깨비 공원’은 그에게 작업을 포함한 인생 전반에 종합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중요한 장소이자 대상이다. 도깨비 공원은 그의 아버지, 고 이기후 교수가 8명의 대학원생이 함께 7년간 공을 들여 2005년 개장한 세계 유일의 도깨비 테마 공원이다. 동시에 그의 타계로 결국 2015년 폐쇄된 기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것은 작가에서 있어 의무감의 장소이자 탐색의 장소이며 연구의 대상이자 재현의 대상으로서 작동 중이다.
전시 《도깨비 공원》에서는 제주의 도깨비 공원에 아버지와 동료가 함께 수집한 수천 점의 도깨비 수집품을 분류하고 기록하며 정리해 나가는 과정 중에 그림으로 기록한 도깨비 조형물에 대한 전시였다. 그는 기록한 도깨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가는 조형물의 경과를 캔버스에 켜켜이 담아내었다. 이 과정은 붓을 통한 본인의 수행적 재현이라기보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하여 흩뿌리듯 다가오는 시간의 경과를 받아들이며 그 장소에 남은 도깨비의 경과를 영상의 프레임처럼 겹겹이 쌓아낸 주관적 기록이고 기록적인 표현이다. 한국의 도깨비는 서구의 비인간 전설의 그것과는 다르게 양가적이다. 순박하지만 교활하고 마주하는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동시에 도우미가 되기도 한다. 매우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치명적 약점도 함께 노출한다. 그에게 도깨비와 도깨비 공원은 개인적이지만 사회의 공공성의 맥락을 함께 가지며 또한 양자의 측면 모두에서 상상의 발현과 연결의 여지를 뻗을 수 있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이 중계지점은 그의 온라인미디어 프로젝트 <도깨비공원.com>과 메타버스 프로젝트 <느영나영>으로 연결된다. www.dokkebipark.com에 접속하면 마주할 수 있는 <도깨비공원.com>은 웹브라우저상에서 작동하는 탐험적인 요소를 지닌 게임이자 아카이브 작업이다. 넓은 도깨비 섬을 돌아다니며 여러 장소에 배치된 도깨비 조형물에 가까이 다가가면 타게팅(tagetting)이 되고 그것을 클릭하면 그가 재현한 도깨비 이미지와 그 도깨비의 속성이 출력된다. 화면의 인터페이스상의 도깨비 방망이를 누르면 도깨비가 섬을 내리치는 효과와 함께 아카이브 웹페이지가 열린다. 이곳에는 그가 지금까지 정리해 낸 도깨비 조형물의 현장 사진과 공원 조성 중 제작된 스케치 자료, 조형물 제작을 위한 미니조형 촬영본, 전경과 지도 등 가히 방대하다고 할 수 있는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2005년 개장하여 2022년 현재까지 그곳을 담아낸 게임 형식의 맵 아카이브와 웹 형식의 자료 아카이브는 사람들에게 도깨비 공원을 기억하며 경험할 수 있는 방문지이자 작가 자신의 시간과 그 감정을 이어줄 수 있는 중계지로서 작동할 것이다.
창작그룹 레벨나인(rebel9)과 함께 진행한 메타버스 프로젝트 《닷과 대쉬의 모험》 중 하나의 챕터인 <느영나영> 또한 이 도깨비 공원과 연계된 디지털 미디어 프로젝트로서 작동했다. 제주 방언으로 ‘너하고 나하고’의 의미를 가진 ‘느영나영’이라는 제목에서부터 관계와 연결에 대한 지향을 느낄 수 있다. 그곳에 로그인하면 쥐고 있는 방망이로 돌을 두드려 도깨비를 깨우는 행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평면 도깨비 이미지의 조형성 및 운동성과 이와 연계된 백그라운드 사운드 및 연속 중첩되는 사건에 의한 믹싱과 화음은 그가 지향하는 경계에 대한 접근과 연결의 감각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동인이며 장치이다. 그 감각은 ‘두드린다-깨어난다’라는 단순한 규칙의 수행을 통해 충족되며 그곳에 로그인한 많은 접속자 간의 유동적인 관계 및 규칙 설정에 의해 더욱 풍부해진다.
<https://finalfla.sh> 역시 그의 기술 미디어에 대한 관점을 드러내는 또 다른 웨이포인트(way point)이다. 제목의 웹페이지 주소를 방문하면 마주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스스로 시각 작업자로서 음악의 제작과 유통을 다루어낸다면 어떠한 시스템이 탄생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는 음악 제작과 연주에 사용하는 응용프로그램인 시퀀서(sequencer)나 입력한 음과 리듬간의 반복 조합이 가능한 전자악기 런치패드(Launchpad)와 같은 컨트롤러의 구조와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다. 해당 웹페이지에 접속한 이용자는 화면에 분할되어 배치된 사운드 소스와 영상 클립을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들을 조작하여 화면과 스피커의 출력물을 조절해 간다. 그렇게 만들어 나간 결과는 사운드와 연동된 영상의 결합물이며 각자의 시작점과 끝맺음의 조합, 그리고 과정의 맥락이 특유의 볼륨감과 연결 감각으로써 눈과 귀에 안착한다. 그 영상에는 2020년에 진행된 전시 《Final Flash》에서 비롯된 다양한 악당들, <드래곤볼>의 베지터와 프리더, <유유백서>의 도구로 동생과 <원펀맨>의 가로우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의 영상 파편은 시퀀서 스위치의 조작을 통해 기이한 영상의 합주 풍경을 이루어낸다. 이들이 각각 조합되고 해체되며 등장하고 사라지는 장면은 기존의 캔버스에 정착되었던 이미지가 사운드를 통해 시동하여 질주하는 운동성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운동을 내포한 잠시 멈춤의 상황과 장면을 다루어낸다. 그는 작품을 구성하는 이미지의 기본 골자가 되는 이미지를 설정하고 그 위에 변형 중의 이미지를 잡아내어 중첩한다. 그 이미지는 애니메이션에서 이야기하는 시작과 끝 점을 지칭하는 키 프레임(key frame)이라기보다 키 프레임 사이 두 이미지를 연결하는 순간의 그것이다. 그것은 사이에서 모핑되는 순간이거나, 또는 변화의 사이 공간을 자연스럽거나 독특하게 채워내는 스미어(smear) 컷이다. 어떠한 상황과 메시지를 정리하고 완결하여 정착한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운동 중이고 진행 중이며 단지 일시 정지의 상태이다. 약간의 에너지만으로도 재차 어딘가로 이동하며 다음의 상으로 변형될 수 있는. 그렇게 펼쳐진 작품의 평면은 정교하고 화려한 질주가 기대되는 루브 골드버그 장치(Rube Goldberg machine)이거나 복잡한 설정의 도미노 게임(domino game)의 시작 지점이다. 이미지에 과정을 덧씌워 에너지의 준위를 높여놓은 그의 평면은 안정과 정착 이전의, 이탈을 전제하며 정적이지만 분출을 명확히 예고하고 있는 현상적 상황이다.
그는 재현의 과정, 정착의 방법에 대해 그렇게 중간자로서 경계를 다루어내는 화자이다. 그래피티와 회화,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해 경계선 상에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번역하고 해석하여 정착시키고 있다. 시작과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잡아낸 순간은 약간의 에너지로 재차 변화하고 언제든 이동할 불안정 상태와 같지만, 그 방향성은 한편으로 관람자의 선택에 의한 모험의 시작이자 분기로서 다가온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서 있는 대지가 어디인지, 자신의 행위가 무엇인지 그 근본과 좌표를 고민하는 방랑자이다. 스트리트 아트와 컨템포러리 아트, 캔버스와 애니메이션, 아버지와 아들. 그의 작품세계와 여정에 다양한 영역과 대상이 충돌하고 연결되며 끊임없이 의미와 맥락의 끈이 형성된다. 그렇게 드러나는 장면은 영역의 면이라기보다는 경계선상의 망이다. 영역 자체를 다져나가기보다는 영역을 인식하는 경계선 위에서 차분히 발자국을 떼며 바라는 위치에서 실을 묶어 드리우고 있는 듯 하다. 그 끈을 어떻게 받아들여 연결하고, 또 다른 의미의 망을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역할은 관람자에게 전달된다. 관람자는 그 흥미롭고 불안정하며 동시에 유동하며 그 다음을 유혹하는 평면 위에서 작가가 건네는 역할에 대한 행동을 충실히 수행하게끔 안내받는다. 경계선상의 플레이어는 또 다른 경계 위의 플레이어에게 바톤을 건내고 그 연계는 새로운 이해의 영역을 형성하며 세계의 유동을 지속한다.
이해의 선물- 도깨비처럼 그리기
글 조주리 (전시기획, 미술평론)
지난여름, 작가 이해강으로부터 들었던 도깨비 작업의 서사는 그 어디서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야기로, 이따금 나는 뵌 적도 없는 그의 가족 구성원들, 특히 작가의 아버지를 멋대로 상상하며 제주에서의 단란한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던 한 차례의 인터뷰와 아주 가끔 오가는 연락 이외에는 별다른 교분을 갖고 있지 않은 작가의 가족사를 고려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작가에게 실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자처하여 짊어진 가족의 예술적 유산과 홀로 분투하고 있을 양가적 마음, 그리고 그의 고된 여정이 퍽 신경 쓰인다. 원고 작성의 출발점에 있는 나 역시 작가 이해강처럼 어떤 과제를 받은 느낌이다. 이해강의 작업에 대해서 미술 비평을 하는 것이 옳을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각도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지 말이다.
요약하자면, 2022년 올 한 해 이해강은 작고하신 아버지께서 남긴 제주도의 도깨비 공원에 대한 전면적 재조사와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회화 시리즈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남아 있는 파편적 자료와 인터넷의 기록을 짜 맞춤하여 들여다본 도깨비 공원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작가의 아버지가 손수 조성하고, 가족이 주체가 되어 운영해온 이곳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상업적 테마파크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유는 한 개인의 예술적 집념과 조형적 욕망에 기대어 유지되었던 일생일대의 예술 실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구도 ‘커미션’ 한 바 없지만, 기어코 확장하고 굴러가야만 하는 ‘온-고잉(On-Going) 프로젝트’처럼 말이다.
도깨비 공원의 개장을 위해 쏟아 부었던 예술 노동과 잠시 동안의 절정기, 그 이후의 지난한 흥망성쇠 과정 안에는 ‘닮은 듯 다른’ 父子의 삶이 쌍곡선처럼 펼쳐져 있다.17년간 엄청난 양과 다양한 양식으로 증식하고 번성해 온 도깨비 조각상은 아버지 삶의 물리적인 증거물인 동시에, ‘다른 듯 닮은’ 아들 삶과의 이항(二項)관계를 보여주는 매개물이다. 이해강은 디자인 교육자였던 아버지를 이어 시각 디자이너로서의 진로를 택했지만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씬 안에서 그래피티 작가로서의 활동에 집중했고, 군대 전역 후 기존의 작업 양식으로부터 차츰 떨어져 나와 현대 미술가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전환기를 통과해 나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유수의 갤러리 공간을 통해 선보였던 초기작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여실히 드러난 일종의 자화상 모음이었다고 생각된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한 수직적 위상과 수평적 카테고리의 경계 바깥에서 배회하는 존재, 대중 문화에서 상투적으로 묘사되는 빌런 캐릭터, 꼭 닮아 있지만 은근한 우열과 갈등이 내재된 듀오와 같은 작업의 소재는 작가의 내면을 투사하기에 적합한 장치였다. 내부에서는 외부인으로 오인되고, 외부적 시선에서는 여전히 경계에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 일련의 존재들은 개인의 열등감과 소외의 감각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한 자신감과 도전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 진영을 자유롭게 오가며 몹쓸 장난을 치고, 요술과 혼돈을 부리는 ‘트릭스터(Trickster)’ 같은 존재다. 마치 신화와 전설 속 도깨비처럼 말이다. 남몰래 도심의 골목 깊숙한 곳에 그래피티 스프레이로 자신만의 표식을 남기는 저항의 행위도, 디지털 툴을 사용하여 새로운 캐릭터를 뚝딱 창조해내는 클라이언트 잡(Client Job)도, 캔버스 표면 위로 지금까지 쌓아온 삶의 경험과 본능적 감각을 이리저리 분사해내는 현대미술 작업도 크게 보면 모두 그런 일이다. 아버지 트릭스터가 매일 새로운 도깨비를 만들며 하나의 세계를 일구었던 것처럼, 그 역시 장난과 요술, 창조적 혼돈이 (거의 유일하게) 통용되는 오늘날 미술의 세계에서 자신의 트릭을 하나 둘 실험하는 중일 것이다.
한편, 이해강의 스튜디오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커다란 화면의 회화 작업이다. 전형적인 화가의 작업실 정경인가 싶지만, 이내 그가 제작 중인 온갖 이미지에 담긴 생경함과 야생적 에너지가 훅 들어온다. 일종의 ‘근본 없음’과 ‘어디서 본 적 없는 느낌’, 긍정적 의미에서 오염되지 않은 아마추어리즘에서 오는 낯선 감상일 것이다. 대형 회화의 도상은 명백히 도깨비들이다. 3차원상의 조각을 평면으로 바로 옮겨오는 대신, 작가는 이를 디지털 페인팅의 소스로 변환한 후, 다시 캔버스 위에서 3차원적인 환영을 부여하는 삼중의 과정을 거친다. 컴퓨터 툴로 만든 애니메이션상의 프레임을 화면 위에서 중첩하는 방법은 미래주의 화파에서나 보던 고전적인 환영이어서, 일종의 매체적 유머 내지는 일부러 역-설계한 제작 공정임을 드러내고자 한 작가적 기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깨비같이 그려내는 도깨비 그림’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회화 작업과 연결되는 순환적 구조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도깨비 조각상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을 단순한 기록 용도가 아닌 자신만의 예술적 실천으로 이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변환된 매체가 3D 버전의 VR 프로그램일지, 게임 엔진을 활용한 일종의 플레이스테이션일지, NFT 방식의 도깨비 캐릭터 이미지일지 내용의 활용과 변주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 과정에서 세상사의 얄팍한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서야 할 숙제도, 작가로서 예술적 판단을 하는 것도 온전히 그의 몫이다. 도깨비 공원 건립과 폐쇄에 이르는 17년의 역사를 고증하는 도깨비 조각상은 실존하는 작품이자, 작가에게는 아버지의 유산이며,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을 디지털로 변환해야 하는 인생의 숙제 같은 것일 테다. 조건 없이 받은 선물이지만, 그 속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창조적 계승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수백 점도 넘는 도깨비 조각상의 면면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각각의 캐릭터들을 분류하고 확인하여 이를 다시 디지털 콘텐츠로 옮기는 일은 장례 의식과 고고학자의 일, 그리고 미술관의 학예 업무를 닮아 있다. 이해강은 이 사이 어디쯤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자신의 작업으로, 공공의 서사로, 가상의 이야기로 이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꽤나 버거워 보이는 작업의 무게는 꼭 필요한 핵심만을 남긴 채, 언제 어떻게 휘발되어, 오늘날의 맥락에 맞는 새로운 도깨비상으로 귀환하는 것일까. 묻지 않아도, 염려하지 않아도, 관객보다 애타는 사람은 작가 자신일 것이다.
유물이 되어버린 수백 점의 도깨비 조형물과 디지털 모션 그래픽 사이의 거리는 제주도와 서울, 아버지와 아들, 공원과 갤러리 사이만큼이나 아득해 보인다. 다만 젊은 아버지와 소년, 나이 든 아버지와 청년 아들, 작고한 아버지와 인생의 절정기를 향해 달려 나가는 젊은 아들, 그 둘 사이에 흘렀던 겹겹이 시공 속에 여지없이 도깨비가 있다. 도깨비 공원이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그와 관련된 현실의 곤란한 일들을 애써 묻어두었던 몇 년간은 역설적으로 이해강이 작가로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지고, 몇 번의 굴절을 딛고 나름의 성장을 일군 시간이다. 온통 그래피티뿐이었던 20대 초반을 지나, 컴퓨터 프로그램 기반으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과 다양한 이미지 생산에 전력질주했던 시기를 거쳐, 물감과 캔버스로 매체를 옮겨오게 된 일련의 과정을 짐작하며 되짚어 본다. 그 과정을 ‘필연적 도약’이라고 한다면 그래피티와 회화, 디자인과 미술의 위상을 나누는 일이 돼버릴 테고, ‘우연한 모험’이라고 부른다면 작가의 고뇌와 예술적 분투를 한낱 우연성에 가둬버리는 셈이어서, 이에 대해서는 좀 더 풍부한 작업의 예증과 서사가 쌓이기를 기다리는 편이 좋을성싶다.
다시 도깨비다. 작업 현장에서 마주한 이해강은 그야말로 도깨비 같은 풍모와 에너지를 지닌 사람이었다. 묘사하기에 적확한 말을 찾기는 어렵지만, 도깨비 공원에 설치되었던 수많은 도깨비상 중 하나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진난만한 활달함과 장난기 가득한 전래 동화 속 주인공 같은 모습. 그래피티 스프레이를 벽에 뿌려 자신만의 표식을 남기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어디론가 휙 사라져 버릴 같은 현대판 도깨비. 지난 전시에서 선보인 회화 작업들과 지금의 작업을 연결하여 살펴보면, 자신이 세운 개념과 방법론을 믿고 꿋꿋하게 페인팅을 해 나가는 순간이 막 열린 것 같다. 도깨비처럼 작업을 해 나갈 일만 남았다. 그 길에 저항과 집념, 해학과 환상이 찰싹 들러붙기를 기원해 본다.
<Dokkebi World> Review
그승 속 도깨비월드로
글 Weeraya Kungwanjerdsuk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한국문화전공 박사과정, Lecturer, Sector of Korean Studies, Unit of General Education and Integrated Subjects, Faculty of Liberal Arts, Thammasat University)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한국문화전공 박사과정, Lecturer, Sector of Korean Studies, Unit of General Education and Integrated Subjects, Faculty of Liberal Arts, Thammasat University)
도깨비는 한국 전통 민속 신화에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오랜 세월 동안 한국 문화와 민속 신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도깨비에 대한 역사는 한국의 구전 설화, 문학, 예술 등을 통해 전해져 왔으며, 각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성격을 띠고 있다. 고전 문학에 나타나는 도깨비의 서사는 현실적인 공간과 비현실적인 공간 사이에 있다. ‘그승’, 그곳은 저승과 이승 사이로 ‘그승’이라고 하면 무리 없는 공간이거나 어린이들의 꿈속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깨비는 어떤 존재인가? 한국의 귀신담에 실려 있는 도깨비라는 존재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약 천년 전이나 먼 과거에 묘사된 도깨비라는 존재는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도깨비와는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른가? 이 글을 통해 답을 내리기보다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에는 도깨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도깨비월드’를 통해 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며, 그 출발점으로 도깨비의 역사를 살펴본다.
도깨비의 명칭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도깨비 앞에 다른 명사를 합쳐서 쓰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도깨비는 참도깨비라고 하며, 푸른 색의 신체적 특징을 반영하여 푸른 도깨비라는 명칭을 쓰기도 한다. 문학에서 흔히 묘사하는 도깨비의 모습은 도깨비불이다. 또한 키가 크고 뿔이 났다는 묘사가 일반적이다. 오래전 사람들은 도깨비가 인간과 교류하는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 도깨비가 평안과 풍요와 같은 좋은 것들을 집으로 가져오는 도우미와 같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도깨비와 연결하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의식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일도 했다. 하지만, 조선 시대 귀신담에 나오는 다수의 도깨비는 사람을 헤치거나 싸우기도 한다.
도깨비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삼국시대부터 도깨비와 관련된 이야기가 존재했다고 추정되며,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시대에 관하여 쓰여진 대표적인 텍스트는 <삼국유사>인데, 이 책에 도깨비가 언급되어 있다. 이는 신라 시대 진평왕 시기의 비형랑 설화로 도깨비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고려시대의 도깨비는 <고려대장경>를 통해서 확인된다. <고려대장경>에 나타난 불교설화의 도깨비 연구에 따르면 인도와 중국의 도깨비는 생성, 기능, 성격, 형상 등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에서도 ‘야차(yaksa)’라고 불리우는 도깨비와 같은 불교적인 존재가 있다.
한국의 도깨비는 그 종류가 무지하게 많다. 바다, 육지, 산, 집안 등 특정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하게 출현한다. 또한 도구가 도깨비로 변신한 일화도 있다. <용재총화>, <어우야담>, <천예록>, <학산한언> 등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귀신담에도 도깨비에 대한 글이 거의 빠짐 없이 확인된다. 이러한 기록들에서 확인된 도깨비의 모습과 기능은 복을 주거나 해를 주는 것이며 못생기고 사물에 붙어 요사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료를 통하여 본 도깨비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주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 유형은 풍유와 같이 좋은 것을 많이 가져오는 도깨비이며 다른 유형은 괴물과 같은 무서운 도깨비이다.
문헌 속 도깨비에 대한 묘사가 시작되면서, 문헌 외의 다른 방식으로도 도깨비가 창조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제주도에 있는 도깨비 공원의 현세 공간을 시공간 없이 돌고 있는 도깨비월드로 옮기는 방식은 아주 중요한 아카이브 작업이다. 이 아카이브 작업에서 도깨비공원을 도깨비월드로 만드는 맥락은 필멸하는 물체가 아닌, 불멸하는 정신적 공간으로 옮기는 것이다. 도깨비월드는 건곤(乾坤)이 이루어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간에는 수많은 도깨비들이 존재한다. 이 세계관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간 세상에서 쓰는 서기나 불기보다 도깨비월드에서의 그것이 6,008년이나 더 오래 되었다. 도깨비 공원을 조성한 이기후 교수는 이승에서 먼길을 떠나기 전에 도깨비공원 운영당시 직접 ‘허수깨비’가 되어서 놀러오는 사람들을 놀래키곤 했다. 따라서 도깨비월드의 ‘태초의 허수깨비’는 이기후 교수라고 할 수 있겠다.
도깨비월드는 세속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죽음’을 넘어서 이승은 아니나 저승만큼 멀지 않을 ‘중음’ 같은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아쉬움이나 그리움을 담아 지은 공간이다. 故 이기후 교수는 수목장을 하여 도깨비공원의 한 나무에 깃들어있다. 도깨비월드에서 이 나무는 '도깨비신 나무'로 불리운다. 존재와 비존재 중간적 상태로서 정신이 깃들어있는 ‘도깨비신 나무’는 마음으로 읽는 도깨비월드의 중심 랜드마크이다. 수목장 한 나무, 무덤, 유골함 등등은 먼 곳 어딘가로 떠난 사람이 영원히 떠나지 않길 바라는 아쉬운 마음을 담고 있다. 요컨대, 이곳은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미지근한 정이 서린 공간이다. 도깨비월드는 ‘그승’이라는 곳이자 마음속에 어떤 풍경을 그린 지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깨비월드의 설정이나 이야기는 기존 전통 도깨비와의 유사점은 물론 차이점도 있다. 뿌리 깊은 도깨비 문화를 흡수한 한국사회에서 어릴 적 상상속에서 접했던 정보들이 무의식적으로 뒤엉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유불선(儒佛仙)의 뿌리 깊은 문화와 개인 경험 혹은 배움이 섞여 도깨비월드를 창조하였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간들이 도깨비월드에 들어 가려면 ‘허수깨비’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타자인 인간의 존재는 허락을 받지 않는다. 도깨비월드에서 ‘인간 세상’에 대한 존재는 ‘만물 종족’과 ‘선대 아홉도깨비’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에 잘 알려 진 삼혼설이라는 개념이 있다. 바로 '생혼', '각혼', '영혼'이다. 그러나 도깨비월드에서 이 이론은 전부 깨졌다. 돌-육신-영혼의 관계는 도깨비월드에서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서 인간들은 가지고 있는 혼의 강렬한 단편들을 재료로 삼아 자신의 삶을 꾸며 낸다. 따라서 도깨비월드라는 공간에 들어가는 인간들은 ‘허수깨비’가 되어 도깨비의 어둠 속을 기어 다니지만, ‘겉 허수깨비 속 인간’에게 그 수많은 도깨비월드에 있는 도깨비들은 마치 빛의 흔적들처럼 여전히 닿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들의 ‘정체성’이 있기에 탐험의 향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인간은 이승이나 저승이 아닌 ‘그승’ 같은 이 도깨비월드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그곳의 ‘허수깨비’로서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에게 ‘그승’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도깨비월드의 지역은 <해인경>, <제아쿨>, <호이스>, <호이스트>, <퐁당>, <봉당>, <몽당>, <미치>, <으시시>, <으시시 동쪽 구역>, <선래흘>, <천지인>, <밤밤>, <토그리마을>, <카리스>, <플래그십 아일랜드>가 있다. 각 지역에는 여러 종류의 도깨비가 살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들 간에 전쟁도 벌어졌다. <밤밤>이라는 지역의 '도깨비불' 부족은 신화적인 존재로, 전설에 따르면 자연의 정령들이 특정 울림으로 인해 깨어난다. 남북영역 전쟁 후 앵두깨비가 원만부를 돌리면서 도깨비불이 탄생했고, 이들은 밤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낮에는 돌처럼 잠든다. 원만부의 작동으로 깨숑과 뽀숑의 하모니가 깨지며 일부 정령들이 도깨비불로 진화했다. 실제 도깨비의 역사를 살펴보면 도깨비불은 자주 등장한다. 도깨비불 설화는 한국 전통 민간신앙과 연결되어 다양한 형태로 전해진다. 파란 불빛이나 명당을 표시하는 신비한 빛으로 나타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길을 잃게 만드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전통 도깨비불과 <밤밤>에 있는 도깨비불의 형상은 다르지만 <밤밤>의 도깨비불은 전통 도깨비불의 형상 중 하나 일 수도 있다. 현세에서 ‘허수깨비’를 입고 도깨비월드를 구경한 필자는 이런 도깨비의 모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처럼 도깨비불에 대한 설화는 한국 전통 민간신앙과 연결되어 여러 도깨비불의 모습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전승되고 있다.
도깨비월드에서도 다양한 도깨비들이 살고 있으며, 한국 전통 도깨비처럼 기이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나 성격이 그 예이다.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 태국 신앙과 같은 존재도 발견된다. 그것은 ‘NUS’라는 것으로 도깨비월드의 ‘봉당’에 있다. ‘NUS’는 도깨비 알이자,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이 도깨비의 모습과 기능은 태국 민속 신앙과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콴(ขวัญ)’이라는 것인데, 사람이 죽으면 ‘콴’이 죽은 자의 몸을 떠난다. 돌, 나무, 도자기, 조각상 등 모든 것에 붙을 수 있다. ‘콴’은 사람의 탄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콴’에 대한 관념을 바탕으로 하여 도자기에 시문한 문양도 볼 수 있다. 예컨대 2,500년전 반치앙(บ้านเชียง)호와 사발(사진1 : 콴반치앙(ขวัญบ้านเชียง))에서 콴무늬를 확인 할 수 있다. ‘콴’은 도깨비는 아니지만 영적인 개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야차안에 ‘콴’이 있을 수 있다. 불교나 토속신앙의 세계관 속에서 도깨비라는 존재는 끊임 없이 국경을 넘어 교류하며 공유하고 전승해서 정착했다. 또한 세월이 흘러가면서 토속신앙과 외국에서 투입된 개념이 접목되어 또 다른 도깨비를 재생성한다.
도깨비는 단순히 괴이한 존재의 개념을 넘어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며 한국 민속 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현대에 와서는 도깨비가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를 K-도깨비라고 지칭할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도깨비는 한국의 독창적인 민속 신앙을 대표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특히, 도깨비월드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도깨비들을 통해 한국 21세기의 도깨비의 이미지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도깨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리라 생각된다. 재생성, 재해석 끝에 결국 월드 도깨비는 도깨비월드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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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서 말을 꿰는 놀이의 가능성에 관해: <도깨비월드>를 게임으로 들여다보기
이경혁
게임으로서의 <도깨비월드> –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
현대 미술에서 많은 작가들이 디지털게임의 방식을 참고하지만,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말들이 많다. 새겨들을 부분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게이머들의 볼멘 소리에 그치기도 한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디지털게임의 방식이라는 말이 매우 넓은 범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짧은 글과 말에서 이를 특정하기보다는, 웹 상에 구현된 <도깨비월드>가 왜 우리로 하여금 ‘게임 같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는지, 그리고 게임으로 이 작품을 접근했을 때 무엇이 게임과 다른지를 생각해 보는 편이 용이할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마치 ‘쯔꾸르’같은 에디터로 만든, 혹은 몇 년 전 메타버스 붐이 일었을 때 쏟아져나온 2D 기반의 맵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세계 안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사방으로 움직이고 주변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 분명 <도깨비월드>를 게임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한다. 그런데 단지 캐릭터가 이동하고 상호작용한다고 해서 이를 게임의 방법론을 적용한 작품으로 부르기에는 여러모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단 하나만 거론해 본다면, 플레이어는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일 것이다.
<도깨비월드>는 주어진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무형의 요소들을 배치하고 있고, 이를 활용해 참여자들로 하여금 각자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도록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참여자, 플레이어가 이러한 요소들을 활용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설정이나 이야기는 웹사이트 본체가 아니라 디스코드라는 별도의 채널을 통해 누적된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디지털게임이 오랫동안 보여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즉각적으로 세계에 변화가 일어나는 법칙에 익숙해져 온 게이머 정체성들은 고개를 갸웃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게임의 주요한 속성으로 꼽는 상호작용성이 <도깨비월드>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짚어볼 수 있다. 첫째는 제한된 자원으로 풍부한 상호작용을 매체 안에서 구현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점이다. 풀을 밟으면 눕고, 물건에 부딪히면 부서지고, 상대의 요구를 거부하면 칼을 뽑아드는, 어느새부터 익숙해진 디지털게임 속의 상호작용은 사실 엄청난 맨아워와 자금을 요구한다. 그러한 물적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 구현되는 많은 아이디어들은 결과물에서 생각보다 많은 상호작용을 플레이어의 상상에 맡겨버리게 된다.
두번째는 어떤 이유로건간에 결국 플레이어들이 작품과 부대끼며 경험한 무언가가 작품 외부 채널로 빠져나오게 되면서 플레이어가 작품에 피드백해야 할 이유가 상당부분 소실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피드백은 존재하는 세계를 바꾸기보다는 별도의 세계에 기술된다. 이는 사실 게임의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어떤 매체를 바라보고 그로부터 수용자가 자신의 경험과 감상을 다른 영역에 기술하는 행위, 이를테면 감상문에서 시작해 2차창작으로 이어지는 수용자경험의 재맥락화에 더 가까운 형식으로 보인다.
참여자의 피드백이 가상의 세계와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원전이 되는 <도깨비월드>의 아이디어가 보다 수치화된 데이터로 파고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는 결국 연산기계고, 모든 디지털게임의 상호작용은 연산을 바탕으로 구현된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이야기가 연산될 수 있는 형태로 인코딩된 이후에야 우리는 <도깨비월드>의 게임적 가능성을 이야기해볼 수 있겠지만, 이미 이야기한 바 대로 이는 더 많은 리소스를 요구하는 일이다. 게임을 만든다는 게, 참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도깨비월드>는 게임은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지반 위에 구현된 <도깨비월드>는 일반적인 디지털게임과는 존재론적 측면에서 큰 차이점을 보이는데, 바로 온전한 물리적 원전으로서의 ‘도깨비공원’이 존재하고 그와 강하게 연계된다는 점이다. 물리적 실체로서의 공원과 그 안의 조형물들이 갖는 관계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디지털공간 안에 재현 혹은 복원되었다는 점에서 <도깨비월드>는 디지털게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메타버스로서의 특징에 좀더 가깝게 보일 수 있다.
<도깨비월드>에 진입한 이용자들은 이 공간의 물리적 실체가 있다는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든 인지하게 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아제로스와 같은 완전한 가상공간도,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가 복원한 20세기 초반 미국 서부처럼 실존했지만 고증에 기반한 상상으로 재현해 낸 가상공간과는 다른 세계다. 때문에 <도깨비월드>에서 물리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도깨비공원의 존재와, 그 실체와 <도깨비월드>가 갖게 되는 관계성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다. 어떤 식으로든 <도깨비월드>의 모든 오브젝트는 원본으로서의 공원 오브제들과 연관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도깨비월드>의 의미는 원본으로서의 공원과 ‘어떻게’ 각각의 오브젝트들이 관계맺게 되느냐는 문제와 긴밀하게 엮인다. 실존하는 공원의 무엇이 어떻게 데이터로 변환되었는가? 데이터화한 <도깨비월드>에서 추상된 것은 무엇인가? 연산이 가능한 컴퓨팅기기에서 연산대상이 되는 데이터로 가공된 <도깨비월드>의 오브젝트들은 다른 오브젝트들 – 전체 지도, 사용자 캐릭터, 혹은 다른 공원 내 조형물들 및 카드들 – 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용자들은 물리적 실체로서의 공원과 <도깨비월드>의 차이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된다.
이를 테면 공원에서의 산책은 <도깨비월드>에서 키보드 방향키를 눌러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캐릭터의 이동으로 대체된다. 이 과정에서 실제 공원을 산책할 때 느낄 수 있었던 많은 것들, 바람과 냄새, 두 다리에 누적되는 피로감, 혹은 실제로 걸을 때 겪을 수 밖에 없는 이동시간의 문제와 같은 것들이 추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깨비월드>는 여전히 도깨비공원의 디지털 그림자로 이해된다.
추상된 현실의 많은 것들을 대신해 디지털공간에 들어찬 것은 새로운 상호작용들이다. 시공간은 보다 압축되었고, <도깨비월드>안에서는 오직 각각의 현실 오브제들이 상징하고자 했던 개념들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 개념들은 연산이 가능한 데이터이며, 가상공간 안에서 데이터는 새로운 상호작용을 열어낸다. 각각의 오브젝트들에는 원전의 이야기가 일종의 범주화를 통해 재분류된다. 종족과 속성이 부여되고 수치화된 이들 데이터는 참여자들로 하여금 직접 손에 들고 조물락거리며 무언가 만들어볼 수 있는 형태임을 직감하기 어렵지 않지만, 그 재조립은 생각처럼 녹록한 것은 아니다.
<도깨비월드>는 데이터로 재현된 오브젝트들의 상호작용을 직접 월드 안에서 구현하지 않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바 대로, 실제 데이터들의 상호작용을 프로그램 안에서 일으키고 이를 통해 가상공간에 변화를 주는 일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많은 리소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깨비월드>가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데이터 기반 상호작용보다는 이들 데이터가 상징하는 원전의 내러티브 요소들을 이용자들로 하여금 가지고놀게 만드는 것이다. 각각의 오브젝트가 담고 있는 설정을 묶어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디스코드라는 매체를 기반으로 해 별도로 구성되는데, 이는 새롭게 구성된 가상세계 속의 이야기가 책과 같은 다른 매체에 적히는 개념과 유사하다. 만들어진 가상세계는 그 안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사건과 이야기를 직접 통제하지 못하며, 이는 다른 매체로 미끄러져 나간다.
그렇기에 <도깨비월드>는 엄밀한 정의로서의 디지털게임에 부합하는 텍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게임이 아니라는 말은 <도깨비월드>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원전을 가지고 원전과 강한 연계성을 지니며 재현된 데이터 덩어리는 게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원전으로서의 세계를 재현하며, 재현된 텍스트에 대한 해석과 개입은 마치 일반적인 다른 매체들과 같이 디스코드라는 새로운 매체에 재해석되어 기록된다. 오히려 이 과정을 단순하게 ‘게임’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도깨비월드>가 가진 더 많은 가능성이 생략되는 지점도 존재한다.
불확정성의 미래에 이르러 비로소 게임이 되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 작품의 배경을 듣게 된 과정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실존하는 도깨비공원의 미래였다. 원전으로서의 공원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좋은 기회를 만나 리뉴얼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한 시대를 점유했던 역사적 공간으로서 퇴역할 수도 있다. 미래가 확정되어 있지 않기에, 그 공간의 사이버 재현물로서 존재하는 <도깨비월드>의 미래 또한 확정적이지 않다. 현실의 공원이 사라진다면 <도깨비공원>은 일종의 아카이빙이자 메모리얼 파크가 될 것이고, 공원이 존속하게 된다면 계속 원전과의 강한 연계성을 유지하는 메타버스와 같은 공간이 될 것이다.
공원의 미래에 대한 두 개의 사례는 <도깨비공원>의 존재론적 의미를 ‘기록’과 ‘태그’ 사이에서 오가게 만든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은 사라져간 것들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보다는 그 요소들이 서로 맺고 있었던 상호관계성을 지속하고 보존하는 형태로 기능한다. 디스코드를 통해 물리적 공원의 요소들이 담고 있었던 의미들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은 <도깨비공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뤄질 수 있는 관계지향적 기록물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낼 수 있다. 공원이 계속 존속하게 된다면, 가상공간 속의 모사품인 <도깨비공원>은 물리적 제약들이 추상된 세계 속에 온전히 의미만 남은 것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원전의 의미가 다른 차원에서 새롭게 재조합된 결과물과, 그 결과물이 현존하는 원본 공원과 드러내는 차이를 통해 태그된 의미들의 확장을 꿈꿔볼 수 있는 매체가 된다. 실제 공원의 미래가 어떠한 것이 될지라도, 나름의 충분한 의미로 이 사이버공간은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원의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도깨비월드>의 미래 또한 우리는 섣불리 예단하지 못한다. 과거에 대한 애수어린 기억과 현실에 존재하는 무엇의 쌍으로서의 의미 사이에서 이 작품의 미래는 말그대로 도깨비 장난 같은 것이 된다. 무엇이 튀어나올 지 모를 데이터화한 이야기의 조각들 속을 누가 누비고 다니며 꿰어낼 지 모르듯, 애초에 이 작품 자체도 어떻게 의미지어질 지 규정되지 않았고 이런 점에서 <도깨비월드>는 참으로 게임같은 구석을 마침내 드러낸다. 규정지어지지 않은 채 떠다니는 의미를 널어 두고, 참여자로 하여금 오브젝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실을 이어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실물 공원에서는 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실물 공원이 아니면 불가능한, <도깨비월드>라는 게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